응답했다 1994 – The End of the End

결국은 나레기 커플이었다. 이로써, 여주는 남주와 연결된다는 드라마 절대불변의 원칙은 또 한 번 입증됐다. 전세비 첫사랑 디스카운트에 치킨셔틀까지 담당한 칠봉이는 응사가 낳은 최대의 호구로 떠오랐다. 칠봉파들의 분노는 서버가 터트릴 기세로 달아올랐고… 그걸 또 꾿이 각종 검색어로 찾아보며 낄낄거렸다. 이런 시대에 잠깐이나마 그런 주제로 분노하고, 그 분노를 약올리며 빙그레 웃음지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쓰레기냐, 칠봉이냐. 끝까지 궁금했었다. 그렇게 무려 20회, 10주, 두달 반 동안이나 사람 맘을 들었다 놨다 하더니, 연장전 시작하자마자 미친 듯이 골문으로 질주해서 30m 중거리 슛으로 골든골을 터트리듯, 작가님들은 21회가 시작되자마자 화끈하게 결론을 펼쳐제껴버리셨다. 그리고, 남은 시간동안 승자보다는 패자를 충분히 보듬고, 위로하고, 배려하고 짝까지 지어주었다. 좋으신 작가님들이시다.

결론은, 너무도 당연한 사랑의 힘이었다. 서로를 사랑했고, 아직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남았다. 21회가 끝난 이 순간, 나에게 이 드라마의 정점은 최종회가 아닌 20회 마지막 칠봉이의 독백이다. 외면당한 것도, 차인 것도 아닌 떠나기를 스스로 결심한 사람의 마음은 이루어진 연인의 사랑 고백보다 더 묵직하게 가슴을 울린다.

‘끝날 때까진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하지만 끝이 없는 게임이라면 스스로 끝을 결정해야 한다. 1만 시간의 가슴앓이에도 안 되는 일이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그 가슴을 내려놓아야한다. 끝을 시작해야 한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 요기 베라가 했다는 이 말은 응사 중간에도 한 번 나오지만, 페북이나 트위터의 각종 인용에서도 많이 보인다. 그래도 될만한, 참 멋진말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한 개의 명언으로는 부족한 순간이 많다. 그런 순간의 빈 괄호를 위 대사가 채워주고 있다.

하지만, 놓은 이유가 끝이 없어서겠냐. 끝이 없는 게임이 세상 천지에 어댔대. 계산기는 다 두드려졌고, 어짜피 끝은 난 게임인것을. 나정이는 쓰오빠없으면 웃지도 몬해야.

그래도, 그 계산이 다 끝났어도, 붙잡고 싶은 마음이기에 ‘끝이 없는 게임’이다. 다 알고도 멈추지 않는 내 마음의 질주에 브레이크를 잡겠다는 결심. 시속 200km로 달리는 쌩쌩한 페라리를 폐차해야된다고. 그 멀쩡하고 멋진 것을. 어디로도 가지 않고 그저 뱅글뱅글 돌고 있는 미친 질주의 서킷에 들어와 있는 너를 풀어주기 위해서. 그리고 나도.

그런 순간에 서 본적이 있다면, 이 ‘끝의 시작’은 큰 위로가 되었으리라. 끝은 점이 아니다. 끝은 생각보다 길어서, 시작도 있고 중간도 있다. 하지만, 또 끝도 있다. 끝의 끝까지가는 길은 길고 아프고 힘들지만, 세상의 여느 다른 것처럼 결국은 끝도 끝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당연히 그 끝의 끝에는 또 다른 시작의 시작이 있다.

무기력하게 끝을 당하지 않고, 스스로 끝을 시작하여 천신만고끝에 끝의 끝에 도착해 새로운 시작의 시작에 서게 된 칠봉이를 보며, 그것이 나의 2013년의 끝에도 아주 잘 어울리는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시작한 끝이 이제서야 끝을 맺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제대로 대접받으며. 드라마 덕이다.

그래서 내 마음도 그들의 1994에 한껏 응답했다.

“끝에 끝을 내고, 새로운 길을 달려나가자.”

아직도 마음에는 끝을 내기 싫어 달렸던 길이 보인다. 끝이 있는데, 달리고 있을 때는 끝이 없는 것 같았던 길이다. 응사 1994를 보며 그 길을 다시 달렸다. 오로지 내 것인 것만 같았던 음악들이 까발려지듯 반복되며 시껍하게 만들었고, 잊으려했던 순간들이 접신 무당이 죽은 남편의 말투를 따라하듯 생생하게 묘사됐다. 드라마를 볼 때마다, 그 시간으로 돌아가 웃고 울고 사랑했다. 어쩐지 응사를 보며, 과거와 한판 찐한 푸닥거리를 한 것 같다.

그랬기 때문에, 비로소 끝이 난 것 같다.

다행히 드라마는 모두 첫사랑과 이루어진다. 드라마는 여주남주의 법칙은 지켜냈지만,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첫사랑 불변의 법칙은 와장창 깨뜨려버렸다. 매우 비현실적인 드라마에서 나는 어떻게 그렇게 생생한 과거를 봤을까.

그 이유는 영화 < 건축학 개론> 포스터에 적혀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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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로 그 이유로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썅년이었고 호구였다. 썅년이어서 미안했다. 호구였어도 괜찮다. 너와 나만은, 나정이 욕하지 말고, 칠봉이 짠해하지 말자. 다시 오지 않을 그 시간이 청춘이었다면, 그 속에 내가 있고 너가 있었다면, 그것으로 okay.

끝의 끝을 지나고 나면, 그래서 공식적으로 그 시간이 ‘추억의 상자’에 담긴 후라면 그게 뭐였든, 그건 이제 남은 생을 반짝거리게 해줄 보석 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아닐테니. 이 이상한 세상에서 그런 거 한 줌은 어디 마음 한 구석에 숨기고 있어야 버티지 않겠니.

그러니, 이젠 상자에 담는다.
뚜껑도 덮어둘께. 가끔 열어보며 미소지을 수 있도록.

같이 웃고, 울고, 사랑했던
너와 나의 시간들.

끝의 끝.
The End of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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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멘트 »

  1. 윤정 said,

    December 31, 2013 @ 9:26 pm

    ㅎㅎ 그래. 니 말마따나 나정이는 쓰오빠 없으면 잘 웃지도 못하는데, 항상 그래왔는데 칠봉이는 너무 따라다니더라. 나는 그래서 칠봉이가 좀 무서웠어… 멋지기보다는. 내가 질척거리는 관계를 아주 싫어하잖냐.

    그랬구나… 더불어 그 세월을 돌아보았구나. 나는 처음에는 무쟈게 재미있었는데 나중 갈수록 덜하더라고. 그래도 사투리 느무 좋았다 아이가. 내도 경상도랑 전라도 사투리 배워볼랑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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